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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6월 14일은 포클랜드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난지 34년이 되는 날이었다.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 섬(혹은 말비나스 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 만에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종료되었으며, 이로 인해 갈티에리의 군사독재정권은 실각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은 계속 되어왔다. 최근에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2일(현지시간) 영국에 대해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반환을 다시 주장했는데, 이 날은 1982년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이 시작됐던 날이기도 하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많은 기억들이 담긴 이 제도는 아르헨티나의 소유"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고, "아르헨티나는 대화, 진실 그리고 정의의 힘으로 이 섬을 반환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파 후보로서 14년만에 당선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현재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은 최근 달라진 정황과 함께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가 포클랜드 군도가 아르헨티나 영해 안에 있다는 유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는 아르헨티나 영해 경계를 포클랜드 제도와 주변 해역으로 확대한다는 결정이 명시돼 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 영해는 해안으로부터 200마일에서 350마일로 확대됐다. 아르헨티나 외교부는 이번 결정이 포클랜드를 둘러싼 영국과의 분쟁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실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 분쟁은 제도의 발견과 함께 시작됐다. 



포클랜드 제도에는 1764년 프랑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이들이 보상을 받고 스페인에게 권리를 양도하며 스페인령이 됐는데, 1816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는 독립과 함께 포클랜드의 영유권도 같이 승계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후 1826년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반면, 영국인들도 1766년부터 포클랜드 제도에 정착을 시작했다. 그러다 1833년 포클랜드 연안에서 독일 상인들의 해적 행위가 횡행하자 영국은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섬을 군사력으로 점유하고, 포클랜드를 영국령에 포함시켰다. 영국은 자신들이 먼저 정착한 영토를 다시 되찾았다는 입장이다. 포클랜드 주민 대부분은 영국계이며 현재 영국령 자치정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각자의 입장이 결국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 무력충돌로 나타난것이다.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2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국으로부터의 "영유권 반환"을 요구, 포클랜드를 무력점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아르헨티나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즉각적으로 "군사적 응징"을 선언하고 포클랜드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침공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사실 영유권 때문이라기보다, 아르헨티나의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한 내부 문제를 외부의 위기로 해결하려는 고전적인 정치 수단의 일환이었다. 즉, 인플레이션실업, 정치 혼란, 강제수용소에 반독재 투쟁인사들을 투옥, 고문한 군사독재정권의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 등을 잠재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또한, 영국 정부가 남대서양의 끝에 있는 별볼일 없는 섬에 무력으로 개입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도 무력 점령을 시도한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이 당시 포클랜드 주둔 영국군은 해병대 코만도 소속 수십 명에 불과하였으며, 이들 모두는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레오폴드 갈티에리의 영국의 소극적 대응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으며, 결국 영구과 전면전을 치르게 됐다.
영국군이 포클랜드에 상륙한 후 75일 간의 격전 끝에 6월14일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됐다. 이때 충돌로 아르헨티나인 649명, 영국 군인 255명 그리고 포클랜드 섬 주민 3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종결됐지만 영유권 문제에서는 깨끗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의 실효적 지배가 재개돼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게 됐다.

 

 

 

그동안 수십년동안 중립을 유지하며, 당사자간의 편화적인 협상을 요구하던 국제연합(UN)의 시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 한해서는 영국보다 숫적으로 훨씬 많은 국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행보가 더 주목받고 있다.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해서 일본에게 지속적인 찝쩍거림을 받으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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